패거리 의식을 버리자

김동욱 0 4,502 2006.10.17 00:30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들의 발표대로 북한이 정말 핵실험에 성공했는지에 관하여는 전문가들의 판단을 기다려 보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어 보인다.

북한이 정말로 핵실험에 성공했다면, 이는 한반도의 안보를 송두리채 위협하는 재앙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한국의 여야는 따로따로 줄을 서서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었던 여야가, 이번에는 또 ‘대량 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

어떤 사안을 놓고 여야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을 토론을 통하여 보다 나은 하나의 의견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한국의 여야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뿐, 그 다른 목소리들을 하나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저 자기네만 옳다고 목소리를 높혀 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가치 판단 기준이 잘못되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안을 두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정당성이나 합리성을 고려하기 보다는 ‘누가 그 주장을 했느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 편이 내세운 주장은 늘 옳다고 강변한다. 상대편의 주장은 언제나 틀렸다고 떼를 써댄다. 그 의견을 누가 냈던지 간에, 그 의견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합리적인지, 효율성을 가지고 있는지, 국익에 보탬이 되는지 등을 검토하고 따지는 것이 순리일텐데, 여도 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당에서 낸 안건은 우선 반대를 해놓고 시작한다.

한국의 국회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뉴욕의 많은 한인 단체들도 비슷한 양태를 보이고 있다. 단체의 장을 맡은 사람이 나와 어떤 형태의 연결 고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해당 단체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먼발치서 구경만 하기도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단체가 우리 모두의 단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교계도 마찬가지다. 단체장을 선출하는데도 후보자의 자질보다는 해당 후보가 어느 노회에 속한 사람인지, 어느 신학교를 나왔는지,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모든 것들은 ‘패거리’ 의식에서 나온다. 요즘의 대표적인 패거리들은 폭력 조직들이다.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어느 누구도 용납하지 못하는 집단이 폭력 조직이다. 그들에겐 공존도 공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판에, 우리의 삶 속에 언제부터인가 이 패거리 의식이 강력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패거리 문화’라는 말이 다 생겨 났을까? 패거리 의식은 옳고 그름을 무시하는데서 출발한다. 우리 패의 생각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 것, 우리 편의 생각은 당연히 정당하다고 믿는 것, 그것이 패거리 의식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패거리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인들도 Party Line이라고 하는 패거리 의식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정당의 공천을 받았고,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 준 국민들은 그들이 국민의 대표이기를 원한다. 어느 누구나 그들이 정당의 대표로 패거리 속에만 끼어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진정 패거리를 짓고 싶다면, 큰 패거리를 만들어라. 교계 모두를 아우르는 패거리, 뉴욕의 한인 사회 모두를 아우르는 패거리, 대한민국 모두를 아우르는 패거리, 그런 패거리를 만든다면 말리지 않겠다. 아니 나도 기꺼이 그 패거리 속에 들어 가겠다.

필자 : 김동욱<포트워싱턴>

* 뉴욕한국일보 2006년 10월 16일(월요일)자 A 11면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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