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교회의 축복-여덟째] 안수기도의 비밀

김동욱 0 5,859 2007.03.01 01:45
[작은 교회의 축복-여덟째] 안수기도의 비밀

옛날 한국에서 교회를 다닐 때, 1년에 적어도 한 차례는 수양회 형식으로 기도원을 갑니다. 그곳에서 2, 3일 정도 집회도 하고 함께 음식도 나눕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에는 부흥회 스타일로 집회를 하는데 부흥회의 피크는 목사님께서 성도님들 한 사람 한 사람 머리 위에 손을 얹고서 안수기도를 해주시는 시간입니다.

어릴 때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이었지만 목사님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시는 그 기도가 저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뢰와 평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어린 우리들에게 안수기도를 자주 해주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세례받을 때나, 안수집사 또는 장로 등의 임직을 할 때 정도 외에는 안수기도를 잘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목사님들이 알정한 신학수업과 목회자 후보생이라는 훈련을 받은 후 최종단계가 안수를 받습니다. 안수기도는 대단히 중요한 절차이자, 신학적인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성기도나 박수를 치고 찬송을 부르는 것이나 안수는 참으로 좋은 것인데도 한국교회에서 한 때 광신적인 이단과 사이비 집단의 전매특허처럼 보여졌기 때문에 많은 목사님들이 꺼려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요즈음은 예배시간과 기도회 시간에 통성기도와 박수를 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지만 안수를 하는 것에는 아직까지 세례, 임직식, 파송식 정도에만 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습니다. 더구나 교인수가 많은 중형규모 이상의 교회에서 목사님이 성도님들에게 안수기도를 해 준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목사님들은 베니힌목사님의 안수기도스타일을 흉내내면서 뒤로 넘어뜨리는 재주를 배워서 성도님들을 세워놓고서 뒤로 넘어지게 하는 안수기도가 유행한 적도 있고 지금도 그것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성경에는 함부로 안수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딤전5:22)" 고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안수기도는 네 가지 경우에 주어진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명자에게 안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10장에 보면 제사업무를 맏게되는 레위인들이 안수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두번째는 제사에 바칠 짐승에게 안수를 하거나 염소에게 안수하여 죄를 뒤집어 씌운 후 광야로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레위기 16장에 자세히 나옴) 세번째는 여호와이름을 공개적으로 망령되게 저주한 사람을 붙잡아서 돌로 쳐서 죽이기전에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안수를 하는 굉장히 특이한 장면이 레위기 24장에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선지자들이 병자들에게 치유목적으로 안수하는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나아만 장군의 말을 들어보면 추정할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열왕기하5:11)"

물론 시편 139편 5절을 보면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하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뜻할 때도 안수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 속에는 이미 광범위 하게 안수기도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안수하여 축복하시고, 병자들을 치료하실 때 안수기도를 하셨던 장면들이 많이 나오면 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종교지도자들의 눈에는 목수청년이 제사장이나 선지자 처럼 안수하면서 월권하는 태도로 축복하고 병고치는 장면이 눈에 상당히 거슬렸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제자들도 성도들에게 안수기도를 함으로 성령세례(충만)의 역사가 일어나거나 방언이 터지고 병고침을 받는 장면들이 곳곳에 나옵니다.

나중에는 어떤 불의한 자는 돈을 줄테니 안수기도로 성령받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도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돈을 달라고 하지는 않지만 치유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머리를 내밀고서 안수기도를 받은 후 으례 돈봉투를 주는 일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한국의 특정한 기도원이나 가정제단에 많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서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경건주의자들은 안수기도를 너무나 종교적이고 형식적인 툭별한 것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의 은사주의자들은 성령님을 자기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경박한 모습으로 안수기도를 남발하거나 돈을 주고 받는 저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아이들을 안고서 안수하시며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막10:16). 또한 사도들이 사람들을 파송할 때에 안수하여 보냈으며, 또한 안수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성령이 임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들이 성경대로 살기를 원하여 성경말씀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지금 이 시대에도 "안수기도" 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작은 교회에 다니는 축복이 바로 이것입니다. 큰 교회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축복이 바로 "안수기도" 입니다. 꼭 목사님에게만 안수기도의 특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사랑의 교회 옥 한음목사님은 치유의 은사를 가지고 계신 교회내 안수집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많이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말씀의 은사는 목사님에게 있다고 생각하셨지만 병을 치유하는 은사는 그 안수집사님이 가지고 계신다는 하나님의 은사를 존중하는 겸손하고 훌륭한 인격이셨습니다. 이런 일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말씀을 가르치고 성례를 집전하고 가르치는 목사님이 축복과 치유와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안수기도를 성도님들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위축되어 있기 때문에 일년 열 두달 늘 만나다 보니 가르치는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수 백명의 교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성도님들이 목사님에게 일부러 찾아가서 안수기도를 해주십시오라고 부탁을 드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특히 인격적인 교제도 없이 꼭 병원진료실에 들어가 병 때문에 찾아가서 만나는 의사를 만나는 분위기가 되기 십상입니다.

더구나 목사님의 문제로 인하여 조그만 분쟁이라도 있는 교회 안에서 성도님들이 목사님에게 찾아서 축복이나 치유나 성령충만의 안수기도를 부탁한다는 것은 아마 하늘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일일지 모르고 당연히 그러한 역사도 일어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분쟁하는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참으로 많은 영적인 축복을 잃어버리면서 신앙생활한다고 보면 됩니다.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들도 스스로에게 대단한 축복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해주셨으면 합니다. 예배를 마칠 때 손을 들고서 드리는 축도에 대해서는 당연시 하시면서 예수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축복하고 기도하시는 안수기도의 권한을 거의 사용하시지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교인들이 쑥스러워하면서 안수기도해달라고 잘 하지 못하는 어색한 분위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들께서 먼저 안수기도를 하시겠다고 말씀에 따라 선포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어시는 성도님들께서도 나를 영적으로 인도하시는 목사님께 "안수기도" 를 부탁드리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에게 매주 안수해주시는 목사님과 안수받은 교인이 문제가 일어난다고 삿대질하고 교회내 재판정에 세워서 치리하겠다고 하며, 상대편을 향하여 이놈, 저놈 귀신들렸다고 소리치면서 눈이 뒤집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서울 아파트 촌에서 살 때 아파트 한 복판에 작은 교회가 개척되어 들어왔습니다. 통금이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본교회는 가지 못할 때 집 앞에 있는 작은 교회의 금요 철야기도회를 참석하곤 하였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금요철야기도회에 참석한 많지도 않는 성도들을 매주일 목사님이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안수기도를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지금은 상당이 규모가 있는 교회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면서 참석한 저도 몇번 기도를 받았는데, 목사님이 저를 모르시기 때문에 굉장히 어색하게 여기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안수기도로 인하여 구체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 목사님을 대하는 저의 태도도 달라지고 목사님도 그렇게 되더군요.

작은 교회에서 목사님이 기도회 시간에 일주일에 한번은 아니더라고 한달에 한번, 아니면 석달에 한 번이라도 찬양하고 통성기도하는 기도하는 시간에 머리에 손을 얹고서 성도님 한 분 한 분에게 안수기도를 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죄 지은 더러운 손으로 남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성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그것은 종교적인 요식행위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정신의 질환, 육체의 질환, 영적인 연약함까지도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의 성도님들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할수만 있다면 목사님께 나아가 안수기도를 자주 받으십시오.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겠다는 것은 깊은 신뢰의 표시입니다. 이상한 부흥회에나 신비주의 은사집회가 열리는 곳에 가서 함부로 머리를 내밀지 마시고, 가장 가까운 우리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자주 안수기도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분쟁하는 큰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어떤 면에서 불행한 분들입니다. 더구나 내편, 네편으로 갈려져 목회자의 신뢰가 땅바닥에 추락해버린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보면 영적인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내 각종 세련된 프로그램과 이벤트 속에서 웃샤 웃샤하는 분위기 속에서 휘말려 군중속의 고독을 내면 속에 간직한 째 허무 속에서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다니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것은 종교생활이지 신앙생활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과 성도 사이에 최근거리의 무한 신뢰 속에서 안수기도가 주어질 수 있는 작은 교회의 놀라운 축복들을 느껴보십시오.

* 이 글은 '아굴라'님께서 복음과 희망 싸이트에 올려 놓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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