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김동욱 6 7,386 2007.02.07 00:35
요즈음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황금찬, 도종환 외 99인의 가상 유언장”을 엮어 펴낸 책이다. 작년 여름에 나온 이 책을 우연히 구입하게 되어 흥미롭게 읽고 있다. 회한이 듬뿍 담겨 있는 유언장도 있었고, 감사로 충만한 유언장도 있었고, 당부로 충만한 유언장도 있었다. 돈과는 거리가 먼 문인들의 유언장이어서인지 궁핍한 살림을 꾸려 가느라 애쓴 아내에게 감사해 하는 내용의 글들이 많았다. 많은 문인들 중에서 선택된 101명의 문인들이 쓴 유언장이어서인지, 작건 크건 문학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하여는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음을 글의 이곳 저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한편 한편의 가상 유언장들을 읽어 내려 가면서, ‘내가 만약 지금 유언장을 쓴다면 어떤 내용의 것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첫째, 여러 가지의 일을 했던 것들에 대하여 후회하는 마음을 담을 것 같다. 학창 시절부터 이런 저런 다양한 일들을 했었다. 어느 한 가지 일에만 매진했더라면, 지금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둘째, 좀 더 나를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후회하는 마음을 담을 것 같다. 지금껏 살아 오면서, 난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했다. 가족들 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주위의 사람들로부터는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위하여서도 나와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을 위하여서도 결코 바람직한 생활 태도는 아니었다.

셋째,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후회를 담을 것 같다. 난 사랑을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며 살아 왔다.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질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장애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망설이게 했었다. 신문의 가십난을 장식할 정도의 열정적인 사랑도 해보고 싶었는데…

넷째,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만들었던 것에 대한 후회를 담을 것 같다. 나는 내 생각을 감추어 두질 못한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좋고 싫고가 분명한데다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이다. 그러다보니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나를 무진장 좋아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마치 나를 원수처럼 대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써 내려 오다가 ‘내가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지금껏 걸어 왔던 길을 그대로 걸어갈 것 같았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 같았다. 내가 걸어온 길에, 내가 살아온 삶에, 헛점도 많고, 잘못도 많고, 아쉬움도 많고, 후회스러운 것도 많지만, 한가지 분명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삶의 여정에서 부딪혔던 모든 일들에, 내가 최선이라고 믿었던 대로 행동해 왔다는 것이다. 조금은 나이가 들고 세상물정도 알게 된 지금의 판단기준으로 보면 결코 최선이 될 수 없는 것들이, 당시의 내 판단능력으로는 최선이었다. 후회라고 하는 것은 결국 ‘최선이 아닌 것을 최선이라고 믿은 것에 대한 댓가’인 셈인데, 최선이 아닌 것을 최선이라고 믿었던 때가 제법 많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내 삶의 여정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죽었다는 소문도 났었고, 욕도 제법 많이 얻어 먹었으니, 속설대로라면 앞으로 30년은 더 살 수 있으려나?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의 길이가 얼마가 됐건, 헛점도, 잘못도, 아쉬움도, 후회도 지금껏 내가 살아 온 삶에 견주어 조금은 그 크기가 작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뉴욕한국일보 2007년 2월 6일(화요일)자 A10면 삶과 생각

Comments

김성민 2007.02.07 01:56
  오늘 아침에 나오면서 아내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가족을 뒷전으로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됨의 조건으로 가족을 포기하기를 원하셨는데 많은 사역자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는 뜻이죠. 아내의 눈물을 보면서 주님께서 흘리신 눈물과 피와 땀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한 만큼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숙영아, 사랑한다!'
김혜자 2007.02.07 13:54
  네번깨까지밖에.  .....
제가 쓴다면 얼마나 길게 늘어질지.....저의 인생에 가장 큰 바램 이였던 것은
진작에 하나님을 만났더라면.....
Jinna kim 2007.02.07 14:35
  사랑! 주님이 사랑의 본체로써  보여주신  그 모든것들... 정말  우리 모두가 진정한  성도들이라면?  적어도 주님이 인정하시는 그런  사랑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김동욱 2007.02.08 04:14
  아무리 가상 유언장이라고 하지만,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꼭 써야 할 이야기들은 쓰지 못하는 제약이 있었습니다. '상대가 있는 이야기들'은 자칫 당사자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 때에, 제 삶의 궤적의 큰 줄기를 같이 했던 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겸한 감사나 당부의 글을 남겨 놓아야겠다구요. 현재로서는 김요셉 목사님은 제 편지를 받으시게 될 분들 중의 한 분이실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큰 감사도 드려야 할 것 같고, 많은 부탁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조일구 2007.02.17 23:13
  제가 아는 김동욱 집사님.
제가 감히 집사님글에 댓글을 달자면...
1. 여러가지 일을 했던것 : 다른말로 하면 여러 우물을
파셨다는 이야기이신데, 성경에도 죽을때까지 우물만 파시다가 가신분중에 이삭이 있지 않는지요?  그때당시 평생 한우물을 파기도 힘든시대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자그마치 3개씩이나... 집사님은 원래 하도 재주가 많으시니까 하나님께서 마치 이삭을 시켜 여러 우물을 파신것 처럼 집사님을 여기저기 데려다 쓰신것이라 생각되구요.
2. 나보다 남을 사랑하신것 : 이거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성경어디에도 니하고 니식구만 챙기고 남이야 죽던말던 놔두라고 했던가요 ?  나보다 남을 낫게여기고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이웃을 돌보고....그러셨지요.  집사님은 정말 그렇게 사셨습니다.  주위에 특히 저같이 어리버리하고 사고만 치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항상 도와주셨지요.  그리고, 집사님은 집사님이 한번 거두기로 한 사람에게는 한..없는 이해와 사랑을 베푸셨구요. 제가 얼마나 많이 집사님의 뒷통수를 (표현이 어쩨???) 쳤을때도 이해하시고 감싸주시고 혹, 남이 욕할까봐 막아주시고 그러셨던것을 잘알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집사님께 얻어먹은 저녁값만 모아도 아마 왠만한 사람들은 집한채를 사고도 남을걸요 ? 
3.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후회 : 이건 우리 동양사람들 정서상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 사람들처럼 입으로는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면서 속은 그렇지 않은것보다 표현하지는 않지만, 속에있는 깊은 사랑. 그것이 더 소중한것이라 생각됩니다.
4.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만드신것 : 그렇지요?  왜냐하면 집사님은 아닌꼴은 절대 못보시니까....그런데 제가 보아온 집사님은 항상 바른일을 하시다가 욕먹으신것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회에서 흔히 좋은것이 좋은것, 아닌것도 그냥 덥어 넘어가고 그러면 욕은 먹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과연 좋아하실까요 ?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불의를 보시면 욕도하시고 상도 엎으시고, 그래서 그 당시 기득권의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드셨지요?  여기서 안일하고 좋은사람으로 살다가, 천국가서 (천국에도 못갈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바른일로 욕을 직...싸게 드셔도 하나님이 너 정말 수고했다고 하시면 그것으로 되는것 아닌지...
생각하면서 글을 접습니다.

그런데.... 얼른 들으면 자책하시는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마치 자랑을 하는것 처럼 들리는데요!!!  아무튼 전 집사님에 대한 고마움과 Respect가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구박하지 마시고 잘해 주세요.
김동욱 2007.02.19 22:43
  위의 글을 쓰면서 많은 자책을 했습니다. 제가 무슨 자랑할 일이 있겠습니까?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 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 가고 있는걸요... 그런 저를 하나님께서 참으로 많이 사랑해 주셨고, 지금도 사랑해 주시고 계십니다. 무던히도 참아 주셨고, 지금도 참아 주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끝이 없는 사랑으로 감싸 주시고 참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종종 제가 걸어 왔던 길들을 반추해 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의 제 삶도 되돌아 봅니다. 부끄럽고 추한 삶의 족적들이었습니다. 감히 필설로 표현할 수 조차 없는 악한 삶을 살아 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현재 까지의 저의 신앙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뉴욕새교회에서의 십 년 여 세월... 그 기간 동안에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한 분 한 분을 모두 거명할 수는 없지만(저와 가깝게 지낸다는 것 자체를 트집잡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었으니까요), 조일구 집사님과의 만남도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고, 축복이기도 했습니다. Little Kim 이라고 하는 칭찬인지 비아냥인지(후자 쪽에 더 가까운 의미였겠지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 가면서도, 늘 제 곁에 있어 주셨습니다.

어제 우리 교회 홈페이지를 찾으시는 분들 중에서, 조일구 집사님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신 분들이 "조일구 집사님이 누구시냐?"고 물어 오셨습니다. 길게는 설명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요즘 자주 갖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뉴욕새교회에서 저와 신앙 생활을 같이 하셨던 분들 중에서, 딱 세 분만 납치라도 해오고 싶다는... 다른 두 분의 이름은 거명치 않겠습니다. 행여 그 분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가 되어서입니다.

기도하시고, 이미숙 집사님과도 충분히 상의하신 후에, 예수생명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로 가꾸어 나가는데 힘을 합해 주십사고, 이 자리를 빌어 부탁을 드립니다. 이 글이 적어도 상당한 기간 동안 조일구 집사님께 어려움을 드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 글을 쓰라고 명하시는 것 같은, 그런 감동이 저에게 강력하게 와 닿았습니다.

언제나 함께 해 주셨던 조일구 집사님께 깊히 깊히 감사드립니다.

샬롬!

추신) 선아도, 선호도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 아이들 본 지도 꽤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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